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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子善
작성일 2014-12-03 (수)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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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란 무었인가


유교란 무었인가 (儒敎者辨)....조선유교연원 위암 장지연 선생 저 ...

   
유교란 어떤것인가   주례 태재지직(周禮 太宰之職)에

“유는 도로서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하였고 설문에 의하면 ”天.地.人을 통달한 것을 유라고 한다“ 고 하엿으니 유를 어찌 쉽게 말하겠는가 예기 유행 편에 공자가 애공의 물음에 답하여 이르기를 ”박학하여 궁하지 아니하고 독실하게 행하여 게을리 아니하며 유심한데 있어서도



음란하지 아니하고 상통하여 막히지 않으며 어진이를 존모하고 여러사람들을 포용하며 모를 다듬어 (毁方) 화합한다 ” 고 하니 너그럽고 넉넉함이 이와같음이 있다 또 말하기를 “유자는 내칭할것이 있을때는 친한 것을 피하지 않고 외거함에는 원망을 피함이 있으며 공적을 딱으며 일을



쌓으며 어진이를 추천하여 진달한다 ”고 하였다 그러므로 한서에 이르기를 “유가는 음양을 따르고 (順陰陽) 교화를 밝힌다 (明敎化)” 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육예(六藝)의 글을 널리배워 천도를 밝히고(明天道) 인륜을 바로 하며 이상적인 정치를 이루는(至治) 成法인 所以이다 “ 라고 하



였으니 어찌 일직이 명예나 벼슬을 꾀하는 마음이나 편당을 세워 사계의 영위를 꾀하는꼴이 근세에 명색이 소위 山林學者 라는 따위들과 같겠는가. 莊周는 말하기를 유는 시와 예로서 발총한다 고 하였으니 이는 유를 비방한 말이다 그러나 유학을 빌려서 세상을 속이고 명예를 도적질하



는자는 어찌 발총의 기롱을 면할수 있겟는가 論語에 이르되 “너는 군자유가 되고 소인유가 되지말라 ”고 하였는데 공안국(孔安國)이 주석하여 이르기를 군자는 도를 밝히려고 하고 소인이 유자가 되면 그 명예를 자랑한다 “ 하니 아~아 ~! 세상에 참으로 명성을 자랑하는 유자가 많도다 혹



자가 말하기를 노나라는 유고를 썻으므로 쇠퇴하였다는 말이 있는 것을 양웅이 임 자세이 분변 하였다고 한다 시험삼아 보건대 송대에는 유현이 배출되고 도학이 크게 발흥 하었으나 실로 3대 이후 문명이 가장 성대 하였다 그럼에도 마침내 금.원이 침공하여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 마침내



중국이 망했으니 유자의 효용이 어디 있는가 조선으로 말하더라도 신라와 고구려 시기에는 모두 불교를 숭상하고 유학은 밝지 않았는데도 그런때는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이 편안하고 잘살아 혹은 일천년 혹은 팔백년 이나 국권을 유지 하엿으며 고려의 왕씨도 또한 불교를 존숭하여 받들기



를 유교의 갑절이나 하였는데 한번 宋儒 들의 학문이 수입됨으로부터 본국의 교화가 더밝아진것도 아니고 이렇다 하게 소란을 진정 하지도 못하고 쇠약한 것을 흥기하여 회복하지 못하였다 우리조선이 고려를 대신하여 일어나서 성군과 현신이 儒術을 숭상하고 도학을 중히 여기며 초양에



있는 유학의 선비도 누구 할것없이 인재를 등용하고 尊尙 장려 하였으므로 유교가 빈빈(彬彬)하게 진흥하여 전고에 없이 발달 하였으므로 저 송나라 유교의 왕성함 보다도 오히려 지나쳣으니 참으로 절정에 이르럿다고 할만하다 그런데도 요순시대 같이 이상적으로 다스림을 이루지 못하



고 국세는 도리어 쇠약해져서 오늘같은 형세에 이르럿으니 어찌된일인가 ? 이 어찌 유를 써서 노를 쇠퇴하게 (用儒魯削)한 사실이 아니겠는가 . 아앙 이어찌 유교의 죄 이겟는가 ? 양웅이 말하기를 “노나라는 진유(眞儒)를 등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니 만일 진유를 썻다면 천하에 대적할 나라

가 없었을것이다“ 라고 하였다

고려의 멸망은 유교의 잘못이 아니라 왕씨의 자멸이니 비록 포은 정몽주와 야은 길재 등의 제현(諸賢)이 있었다고 하지만 큰집이 이미 기울어진 시기를 당하여 한손으로 어찌 능히 떠받쳐 지탱 하겠는가 ? 우리조선이 쇠약한 데 이른 것으로 말하자면 이른바 노나라에서 진유를 쓰지 앟았다는것과 같다는 것이다



사화(士禍)의 참혹함과 붕당의 폐해는 이미 말했거니와 연산군 무오년 이래로 이름있는 유학자가 어느시대이고 없지 않았지만 일체 형옥에 걸려들어 화액을 입고 불우함속에 곤박되어 제대로 종말을 맞은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 또 하물며 당파가 분열된 이후로 한가지로 합심단결 하여 국



사를 처리해나가려는자가 이ㅆ었겟는가 ? 공자의 이른바 어진이를 사모하고 많은 사람들을 포용 하며 모난 것을 없애고화합하는자는 널리 한시대에 구해 보아도 얻지 못하였다 율곡의 현명함으로도 동서의 당쟁을 조정 하려고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고 영조의 성명으로도 노론과 소론을



탕평 하려 하였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으니 전현의 이른바ㅣ 오래도록 선치가 없었없는 것은 어찌 붕당의 해독이 아니겟는가 ? 그러나 이런 것이 어찌l 유교가 그렇게 한것일까. 실은 바로 정치가 점차로 그렇게 길들여진 것이다 . 그리고 유교의 이름을 가차(假借) 하여 세상을 속이고도



아닌 듯이 위장하여 부끄러운지 조차 알자못하는 자의 죄이다 이는 다만 선왕의 죄 인일 뿐만아니라 바로 공맹의 죄인 이거늘 .이것을 가지고 유교를 죄책하면 유교가 어찌 이를 수긍 하겠는가 ? 맹자가 말하기를 “도가 궁하면 자기 한 몸이나마 처신을 잘하고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면 천



하와 함께 도를 행한다 “ 고 하였으니 대개 선비가 처세함에 있어 몸을 닦고 어진말을 세워 선각자로서 후각자를 깨닫게 하는 것이 궁곤에 처하는 도리요 .몸을 세우고 도를행하여 은택이 생민에게 미치는 것은 그 지위를 얻는일이니 . 유교의 도술이란 이러할 따름인가 한다.



조선유교연원 에서 발췌

자 舜韶 순소, 호 韋庵 張志淵 위암 장지연 1864- 1921

 황성신문, 경남일보 주필  

논설 : 광무 9년 을사늑약시 이날에 목놓아 통곡 하노라 (是日也放聲大哭)

저서 : 위암문고 ,조선유교연원,일사유사 대한최근사 대한강역고 ,大東文粹.등.

한재문집 에  정 한재공 규영 님과  촉석루에  함께 올라 시를 지은것이 5~6 편 나옵니다.  

   
http://cfile294.uf.daum.net/image/113386164B0F38E61F4A48
http://cfile294.uf.daum.net/image/113386164B0F38E61F4A48

   진양정씨 은열공 시조 사당 용산재 정문 현판  숭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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